나는 솔직히 얘기하자면 유산소 운동이 무섭다. 한 10년 전 회사에서 단체로 Gym을 끊어 준 적이 있었는데, 회사 사람들과 다같이 인터벌 트레이닝 중에 거의 실신한 적이 있었다. 눈 앞에 별이 반짝반짝거리고 그 별들이 엄청 많아지더니 티비화면이 지지직 거릴때 나타나는 화면처럼 눈 앞이 변하더니 숨 쉬기가 힘들어 쓰러졌었었다. (사람이 실신해서 죽어가는데 그 옆에서 웃고 있던 그 분... 잊지 않겠다) 여튼 그때의 충격으로 트라우마가 생겨 유산소를 조금이라도 심하게 했다간 또다시 그런 상황이 발생하진 않을까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실은 오늘의 러닝이 좀 무서웠다. 왜냐하면 제목부터가 Speed Run, 그리고 Hard pace and effort!! 오늘 잘못하다간 그 때의 영광을 다시 한번 누릴 수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 막 뭔가 달리기가 재밌어지려고 하고 있었고,(벌써?) 힘들면 중간에 그냥 포기하고 돌아 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오늘은 집에서 2km정도 떨어진 해변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원래 진작에 가 보고 싶었는데 2km를 내가 완주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막막함에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틀동안 달려 본 결과 괜찮다고 판단을 내렸고 준비를 마치고 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스피드런은 본인이 5킬로를 달릴때 뛸수 있는 속도로 1분 뛰고, 후에 1분 쉬고를 8번 반복하는 훈련이다. 스피드 트레이닝을 통해 체력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고, 짧고 긴 인터벌과 (공포의 단어 인터벌), 파틀렉, 힐 운동, 템포 달리기 등을 할 예정이다. 여기서 파틀렉이란 스웨덴어로 '스피드 플레이'란 뜻 이다. 파틀렉 훈련은 빠른 러닝과 느린러닝을 번갈아 가며 하는 방식으로 인터벌 훈련의 다른 말인듯 싶다.(공포의 단어 인터벌 ㅎㄷㄷ) 시작 버튼을 누르면 가이드 훈련과 논-가이드 훈련을 선택하라는 메뉴가 나오는데 오늘은 요구사항이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가이드 훈련을 더 추천해서 가이드 훈련을 선택했다.
첫 6분 정도는 웜업 구간이다. 인터벌을 시작하기 전 몸을 데워 부상을 줄이고 빠른 러닝에 조금 더 적응하기 위해 너무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달리는 구간이다. 6분이 지난 후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고 1분 빠른 페이스의 달리기를 시작했다. 3번째 인터벌에 다다랐을 무렵 드뎌 바닷가에 도착했다.
바닷가 구경할 시간이 없다, 헤드폰 안으로 가이드 코치의 음성이 들려왔다. "You have 30 seconds left to go." 4번째 인터벌을 마쳤을 때, 코치님이 말씀하시길,
코치 : "이제 4번의 인터벌을 마쳤는데, 혹시 앞으로 몇번의 인터벌이 남아있는지 아니?"
나 : '4번이요. 저 이래봬도 산수 잘합니다.' 속으로 생각했다.
코치 : "아니, 앞으로 한번 남았어."
나 : '엥? 달리기만 잘하고 산수는 못 하세요?"
코치 : "앞으로 몇 번의 인터벌이 남았는지 상관없어, 4번이 남았던 5번이 남았던, 오로지 30초 후에 다가 올 1분의 달리기만 생각해"
아... 뭔가 머리를 맞는 기분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항상 목표를 설정해 두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목표가 너무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중간에 포기해 버리는 성향이 있는데, 그 정상으로 향하는 동안에 짧은 목표를 여러개 설정해 주고 하나하나 딛고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마지막 목표에 도달해 있을것이다. 예를 들어 100일의 챌린지도 보면, 100일이 엄청 긴 시간처럼 보이지만, 일단 하루만 해보자 하는 식으로 달리기를 하다 보면 언젠간 100일 혹은 200일 마침내는 나의 루틴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달리기를 하며 인생을 가르쳐 주는 코치님 당신은 도덕책...
여차저차 8번의 인터벌을 마치고 또 코치님이 말씀하시길,
코치 : "오 넌 정말 대단해 8번의 인터벌을 다 끝내다니 정말이지 믿을 수 없군"
나 : '감사합니다. 이제 끝난건가요?'
코치 : 'ㅇㅇ 이제 거의 다 왔어. 앞으로 1분이 남았는데 너에게 30초를 주고 나도 30초를 가질꺼야, 너의 30초는 네가 무엇을 하던 상관 없어, 나 정말 아무것도 안 할테니까 너 알아서 해, 나의 30초도 정말 중요한데 이 30초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거 할꺼니까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 오케이?"
나 : '뭐지.. 이 불길한 예감은?"
코치 : "너의 30초가 거의 다 끝나가. 이제 나의 30초가 남았는데, 나는 네가 나의 30초를 달리는데 써줬으면 좋겠어"
가끔씩 유투브로 보던 헬스 트레이너들이 "하나 더, 마지막 하나만 더, 자 정말 라스트" 라고 하는 모습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나 : '엥? 뭐라고요? 와 진짜, 세상 모든 트레이너들은 다 똑같구만, 거짓말쟁이네. 마지막 끝났다고 했자나요~ㅜㅜ'
코치 : "오 노노,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인터벌은 끝났고 그냥 나는 나의 30초를 네가 뛰어주길 바랄 뿐이야, 마지막 30초는 지금까지보다 더 빠르고 더 힘차게 달려주길 바라"
몇 분전에 존경스럽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거짓말만 남았다. 마지막 30초 남은 힘을 다 해 뛰고 나니 날이 어둑어둑 해 지기 시작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뉴질랜드 선셋은 정말 아름답다.
- 오늘의 기록
- 달린 시간 : 16분 51초
- 달린 거리 : 2.69 km
- 평균 페이스 : 6분 15초
- 몸무게 : 늘어서 패스 ㅋ
오늘도 성공했다,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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